개미 없애는 방법

박하향
냄새에 예민한 개미는 단향을 잘 찾아내는데요. 하지만, 냄새가 진한 박하향을 개미가 싫어한다고 합니다. 박하향 오일을 개미가 자주 지나다니는 길목에 뿌려주기만 하면 되는데요. 여기에 굵은소금을 섞어서 뿌리면 더욱 좋다고 합니다. 저층의 아파트에 사시는 분이라면 개미가 들어올 수 있는 베란다에 뿌려주시면 좋습니다.

식초
 가정에 박하오일이 없다면 개미 없애는 방법으로 식초를 이용해 볼 수 있는데요. 개미나 지나다니는 길목을 식초로 자주 닦아주면 식초냄새로 인해 개미가 접근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특히, 개미는 같은 길로 움직이는 습성을 가지고 있어 개미가 다니는 곳을 잘 봐두도록 하세요.

고무냄새
냄새에 민김한 개미가 고무냄새를 굉장히 싫어한다고 하는데요. 설탕통이나 꿀통 등의 단음식에 개미가 꼬일 확률이 높은데요. 설탕통이나 꿀통에 개미가 꼬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고무밴드나 노란고무줄을 여러겹 감아주시면 좋습니다. 부엌에서 고무장갑을 사용하다보면 손가락부위에 빵꾸가 나는 경우가 있는데요. 이런 고무장갑을 버리지 마시고 잘라서 고무밴드로 활용하시면 된답니다.

베이킹소다
 청소할 때 자주 쓰이는 베이킹소다가 개미 없애는 방법으로 좋다고 하는데요. 베이킹소다를 개미가 다니는 길못에 뿌려주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습니다만, 베이킹소다를 물과 섞어 바닥에 발라주면 베이킹소다가 마르면서 바닥에 달라붙어 효과를 더욱 높일 수 있다고 합니다.

분필
이건 필자가 어렸을때 해본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데요. 개미가 좋아하는 과자 부스러기나 설탕을 놓아두고 분필로 그 주위를 원으로 그리면 개미가 원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을 보았는데요. 어렸을때도 이것이 참 신기하고 재밌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분필이 개미의 냄새를 없애주기 때문에 개미가 다니는 곳에 분필로 그어주면 개미가 길을 잃어버린다고 합니다.

계피가루
 마지막으로 개미 없애는 방법으로는 계피가루를 이용하는 방법인데요. 계피가루는 개미 뿐만아니라, 바퀴벌레 퇴치에도 도움이 되는데요. 개미가 지나다니는 길목에 개미가루를 뿌려두면 개미가 계피냄새를 맡고서 피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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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1

세상얘기 2015. 11. 12. 04:27

어천절(御天節)로 되돌아 본 단군왕검(檀君王儉)의 역사 1

-올해 4월 5일은 음력으로 3월 15일, 단군왕검 어천절을 기리며!


올해는 단기(檀紀) 4345년이다. 임진년(壬辰年)인 올해 양력 4월 5일은 어천절(御天節)로서 단군왕검(檀君王儉) 천제(天帝)의 승천(昇天) 제일(祭日)이다.


한단고기(桓檀古記) 단군세기(檀君世紀)의 기록에 의하면, 우리의 국조(國祖)이신 단군왕검(檀君王儉)께서 음력으로 서기전2370년 신묘년(辛卯年) 5월 2일 인시(寅時)에 탄생하셨고, 14세이던 서기전2357년 갑진년(甲辰年)에 웅씨국(熊氏國)의 섭정(攝政) 비왕(裨王)이 되셨으며, 38세이던 서기전2333년 무진년(戊辰年) 10월 3일에 아사달에서 조선을 개국하여 93년간 홍익인간(弘益人間) 세상을 실현하시다, 130세이던 서기전2241년 경자년(庚子年) 3월 15일에 붕어(崩御)하셨다고 한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단군(檀君)을 신화 속의 인물로만 생각하고 실제 단군조선의 역사를 떠올리지 못하고 있다. 이는 학교교육의 문제이기도 하고 국사교과서 문제이기도 하며, 식민사학으로 인한 병폐이기도 하다.


일제는 우리에게서 정신을 빼앗아 갔다. 제국주의 시대에 일본이 우리의 조선을 병탄하면서 수많은 문화유산을 강탈하여 갔으며, 국토를 손괴하였고, 살인과 성폭행을 서슴지 않았으며, 결정적으로 역사를 왜곡시켰다.


지금의 우리는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잊어 가고 있다. 1945년 광복으로 일본은 물러 갔어도 일본 제국주의로 인한 정신적 식민시대는 이직도 계속되고 있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 제국주의로 세뇌되었던 식민사관에서 탈피하기 위하여서는, 열린 마음으로 우리 선조들이 남겨주신 역사기록을 소중히 여기고 연구하여 밝히고, 모든 국민이 알 수 있도록 공개하고 국사교과서는 물론 학교교육도 혁신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소위 단군신화로 인하여 한국국민들 대다수가 아직도 단군은 곰의 자식으로 혼동하고 있으며, 사람이 사람을 낳는다는 당연한 과학적 지식을 동원하지 못하고 역사와 신화의 갈림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곰이 그냥 곰이 아니라 곰족 즉 웅족(熊族)을 나타낸 글자임을 아는 순간 소위 신화의 비밀은 풀리는 것이다.


실제로 역사 속에서 단군은 임금의 호칭이며 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단군조선(檀君朝鮮)이나 고조선(古朝鮮)이라 말할 때의 단군은 배달나라 임금이라는 뜻이며, 배달나라를 정통으로 계승한 조선(朝鮮)이라는 나라의 임금이 되는 것이다. 즉 단군조선은 서기전2333년 무진년(戊辰年) 10월 3일에 건국되어, 서기전238년 3월 16일에 오가 공화정으로 넘어갔다가, 서기전239년 임술년 4월 8일에 북부여를 세운 해모수에 의하여, 서기전232년에 북부여로 계승되어, 세계역사에서도 유례가 없는 2,102년간 47대 임금이 다스린 역사를 가진 국가이다.


물론, 단군조선 즉 고조선을 건국하신 시조는 단군왕검이라 불리는 분이시다. 서기전2333년 무진년에 아사달에 수도를 두고 조선을 건국할 때 단군왕검은 38세이셨다. 즉 서기전2370년 신묘년에 탄생하였으니 우리나이로 38세에 해당한다. 나이를 계산하는 방법이 우리 한국과 서양이 다르다. 우리는 태어날 때 이미 한살이라 하여 태아를 사람으로 보는 것이다. 그만큼 생명을 귀중히 여겼던 것은 바로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 사상과 홍익인간(弘益人間) 사상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삼국유사나 현금에 애독되는 한단고기 등의 여러 기록에 의하면, 단군왕검은 배달나라의 한웅(桓雄)의 아들로서 조선을 건국한 것으로 되는데, 단군왕검이 아버지 한웅을 이어 배달나라의 임금이 되면 되는 것이지 왜 조선을 건국한 것일까? 여러 기록을 뒤져도 그 이유를 명확히 찾아내기는 사실상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러나, 서기400년경 신라시대 박제상이 지었다는 부도지(符都誌)라는 기록에 의하면 요(堯)임금의 전란(戰亂:전쟁 반란)으로 동북지역의 아사달로 이동한 것으로 나온다. 그렇다면 원래 단군왕검은 아사달의 남서지역에서 다스리고 있었던 것이 되는데, 이를 한단고기 단군세기에서는 웅씨국(熊氏國:곰 씨족의 나라)의 비왕(裨王:보좌 임금)으로 24년간 섭정하고 있었다라고 적고 있는 것이다. 즉 소위 고대중국의 성군으로 알려진 요임금이 배달나라 말기에 반란을 일으켜 세상을 어지럽혔고, 이에 단군왕검께서 그 전란을 피하여 동북지역으로 무리 800을 이끌고 이동하여 아사달에서 구족(九族)의 추대를 받아 조선을 건국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서기전2333년 무진년 10월 3일에 단군왕검에 의하여 건국된 단군조선은 요임금의 나라와 병립하였던 것이나, 약10여년이 지난 후 단군조선의 신하로서 요임금을 토벌하러 갔던 순(舜)이 아버지의 가르침을 저버리고, 굴복한 천자(天子)였던 요임금에 협조하면서, 결국 요임금을 이어 천자(天子)가 되었던 것이며, 소위 요순시대 9년 대홍수의 치수문제로 인하여, 단군조선에서 치수법을 전수해 줌으로써, 순임금 부자간에 다시 화목하게 되었고, 순임금은 당분간 단군조선의 충성스런 신하가 되었던 것이다.


이후 단군조선은 단군왕검의 태자였던 부루가 단군이 되어 뒤를 이었고, 1,048년이 지난 서기전1285년(단기1049년)에 22대 색불루 단군에 의하여 고씨(高氏) 단군시대가 되었으며, 1,908년이 지난 서기전425년(단기1909년)에 45대 구물 단군에 의하여 국호를 대부여(大扶餘)라 칭하기도 하였고, 단기2,096년인 서기전238년 3월 16일에 마지막 47대 고열가 단군이 나라의 재정이 모자라고 명령이 듣지 않아 오가(五加)들에게 훌륭한 임금을 추대하여 정치를 하라고 임금자리를 내놓았던 것이며, 단기2,102년인 서기전232년에 북부여를 다스리던 해모수(解慕漱)가 단군조선의 오가(五加)들을 설득하여 공화정(共和政)을 철폐하여 단군으로 즉위하였던 것이다.


삼국유사에서 단군의 아버지를 한웅(桓雄:환웅)천왕(天王)으로, 한웅의 아버지를 한인천제(桓因天帝)로 적어 한인, 한웅, 단군을 아버지, 아들, 손자로 기록하고 있으나, 한단고기(桓檀古記)에서는 한국(桓國) 3,301년간의 7대 한인과 배달나라 1,565년간의 18대 한웅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하여 소위 개천절이라 하는 날은 단군왕검의 조선개국일 뿐만 아니라, 한웅천왕이 배달나라를 개국한 서기전3897년 갑자년 10월 3일을 기념하는 날이기도 한 것이다.


국사교과서에는 아직도 단군조선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상세히 기술하지 못하고 갑자기 위만조선과 한사군으로 이어지는 역사를 적고 있는데, 이는 정통성을 흐리는 것이며, 위만조선과 한사군 시대에는 엄연히 해모수 단군이 건국한 북부여가 단군조선의 진한 땅에 있었고, 마한 땅이던 한반도에는 단군조선의 유민들이 대거 이동하여 새로운 진한, 마한, 변한이 세워져 후삼한 시대가 되었던 것이다. 이후 북부여는 고구려로, 진한은 신라로, 마한은 백제로, 변한은 가야로 계승되었으며, 모두가 단군조선의 후예의 나라였던 것이다.


역사적으로 문제가 되는 큰 부분이 단군조선의 영역 문제인데, 고대중국의 영역을 보더라도 산동지역과 발해만 유역과 만주지역과 한반도 지역이 단군조선의 영역이었음이 드러나는 바, 산동지역과 북경지역을 포함한 발해만 유역과 그 동쪽 지역에서 출토되는 역사유물들을 무성의하게 관과하지 말고 항상 단군조선의 유물일 가능성이 농후함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특히 고대중국의 연나라 화폐라 알려진 소위 명도전(明刀錢), 첨수도(尖首刀) 등이 출토되는 지역은 영역상으로 볼 때 단군조선의 영토임이 분명하므로 단군조선의 화폐임 명백한 바, 재검토와 재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단군(檀君)은 나라로 보면 국조(國祖)이시며, 인물로 보면 우리 한국인의 조상(祖上)이시다. 4,300여년이 지나면서 단군의 피를 잇지 아니한 지금의 한국인은 귀화인을 제외하면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우리 조상을 모시지 아니하면 누가 모시겠는가? 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하여 단군조선의 진한 땅(만주지역)과 번한 땅(발해만 유역)을 모두 고대중국의 변방으로 조작하는 것을 그냥 눈뜨고 당할 것인가? 우리의 역사는 한반도에 국한되는 역사가 아니라 단군조선 시대 이전에는 고대중국을 제후국인 천자국(天子國)으로 둔 천제국(天帝國), 천왕국(天王國), 천군국(天君國)의 나라였다. 영토는 역사의 흐름에 따라 줄어들 수 있으나, 정통계승의 역사는 줄어 들 수 없다. 역사를 포기하는 것은 조상을 무시하는 것이며, 능멸하는 것이며,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이 된다.


올해 4월 5일은 음력으로 3월 15일로서 단군왕검께서 서기전2241년에 승천하신 날안 바, 서기전2333년 10월 3일에 조선을 건국하여 홍익인간 이념을 실현하여 2,100년이 넘는 지구상에서 드문 지상낙원의 역사를 잇게 해 주신 단군왕검께 감사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며, 우리가 후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은 국조(國祖) 단군왕검 천제(天帝)의 승천일인 음력 3월 15일을 어천절(御天節)로서 기념하고, 홍익인간 세상을 실현하셨던 그 크나큰 덕(德)을 기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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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당신의 프리스비(Frisbee: 던지기를 하고 놀 때 쓰는 플라스틱 원반)를 날게 만들고, 변기의 물이 내려가게 하거나, 높은 고도에서 물이 더 낮은 온도로 끓는 것과 같이 물리학은 어느 곳에서나 존재한다. 우리는 이러한 힘을 화학 및 공학 분야뿐만 아니라 자동차라고 불리는 놀라운 기계장치를 만들기 위하여 활용하여 왔다. 그러나 고속도로에서 운전자가 자동차를 움직이게 만드는 다수의 물리학 특성들은 자동차에서 얼마나 많은 연비를 얻을지에 영향을 미친다.

 

원본 : http://phys.org/news/2015-07-properties-physics-affect-gas-mileag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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